평강의 왕 (이사야서 9:6)

John Townsend 02-06-2023
John Townsend

“한 아기가 우리에게 태어나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그분의 어깨 위에 놓일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서 9:6) 크리스마스를 앞둔 4주간 - 평화의 왕, 예수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메시아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이었으며,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평화를 확립할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의로운 기준에 따라 통치하고 땅의 모든 민족을 다스릴 것입니다(시편 2:6-7).

메시아 왕국

이사야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메시아에 대해 많은 예언을 했습니다. 이사야는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 사람들이 그의 왕국으로 이끌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며 서로 화목하게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이사야 2:1-5). 그리고 국가. 무력 충돌은 중단될 것입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칼을 들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4).무기를 죽음의 도구로 사용하는 대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용도가 변경될 것입니다. 전쟁을 위해 군인을 훈련시키는 사관학교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지상의 모든 민족에게 확장될 것입니다.

메시아 왕국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자연 질서로 회복될 것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사자와 한 살짜리가 함께 누울 것이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인도할 것이요”(이사야 11:6).

메시아가 오시면 사람들의 질병과 고통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요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뛰고 벙어리 혀는 즐거이 부르리라”(이사야 35:5-6). 메시아는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고 하나님과 평화를 회복할 것입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한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요 그가 징계를 받아 평화를 얻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샬롬입니다. 샬롬의 개념은 분쟁이 없는 평화라는 일반적인 정의보다 더 광범위합니다. 샬롬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의 삶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삶의 완전성과 온전함입니다.

메시아 왕국은 병든 자가 낫고 죄 사함을 받으며 사람들이 서로 화목하게 사는 하나님의 샬롬을 구현한 것입니다. 모든것은적절한 상태로 복원되었습니다. 샬롬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짓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의도된 삶을 나타냅니다.

에덴의 평화

에덴에는 질병도, 질병도, 굶주림도, 어떤 종류의 고통이나 괴로움.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창조물과 조화를 이루는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과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질서 정연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후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를 다스리라,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느니라”(창 1:28).

아담과 이브의 삶은 목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반영한 문명을 창조하고 하나님의 의의 반석 위에 문화를 세우는 기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대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지식을 추구했습니다(창 3:1-5). 하나님을 떠나 지혜를 버리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하는도다. 아담과 이브의 아들 가인은 질투심에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평화는 폭력과 유혈 사태로 대체되었습니다.

몇 세대 후에 성경은 우리에게 “여호와께서 인류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6:5). 하나님을 공경하는 문명을 세우는 대신 사람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떠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문화를 세웠습니다(창 11:1-11). 하나님의 샬롬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인간 갈등의 근원이 하나님과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는 죄악된 정욕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너희 가운데 다툼을 일으키며 무엇이 다툼을 일으키느냐? 네 정욕이 네 안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냐?” (야고보서 4:1).

“육체는 성령을 거스르는 것을 원하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는 것을 원합니다. 그들이 서로 다투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갈 5:17). 우리 자신의 장치에 맡기면 우리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악된 욕망과 이기심은 계속 방해가 됩니다. 우리 스스로 평화를 확보할 수 없다면 평화로 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따라 살 수 있는 내적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이루려는 우리의 시도가 우리 자신의 이익에 의해 오염되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샬롬은 넘어우리의 파악. 우리는 세상을 적절한 상태로 복원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 9절은 “너희 죄를 슬퍼하고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를 높이시리라.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치유를 위해 하나님께 돌이키십시오.” 성서는 우리 마음의 죄 많은 상태를 애통해 하거나 한탄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그의 용서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마 5:3-6).

샬롬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의 부산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오는 축복이지만 예수님을 평화의 왕, 샬롬을 회복하는 메시아로 영접할 때에만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평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검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심으로써 이사야서 35장 5-6절의 예언을 성취하신다. 메시아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육체적 건강을 회복시키며 죄를 용서하고 사람들을 악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사역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평강의 왕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고 샬롬 왕국을 이끕니다.

예수는 앉은뱅이를 고치고 그의 죄를 용서하고(마태복음 9:1-8) 죽은 소녀를 살리고 병자를 고칩니다 여인(마태복음 9:18-26), 소경 두 사람을 고치고(마태복음 9:37-31), 귀신을 쫓아내다(마태복음 9:32-33).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님과 그분의 샬롬의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마 9:34)고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마 9:36)한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염려하셨습니다. 종교 당국은 영적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필요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영적 권위를 주셨습니다(마태복음 10:1). 하나님의 나라(마태복음 10:7-8) 어떤 사람들은 샬롬을 실천함으로써 제자들을 영접했습니다. 즉, 그들이 지역 사회에서 봉사하면서 그들에게 환대를 베풀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었습니다(마태복음 10:11-13).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를 거부한 것처럼 제자들을 거부했습니다(마태복음 10:1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그들을 거부하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로서 그들은 거절을 예상해야 합니다. “가장을 베엘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식구들이랴!” (마태복음 10:25). 예수님의 길은 하나님의 샬롬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평화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사역을 거부하는 것입니다.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그러므로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부인하리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35). 예수께 복종하는 것과 하느님의 메시아로서의 그분의 통치는 평화로 가는 우리의 유일한 길입니다. 평화를 이루려는 다른 모든 시도는 우리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이며 세상에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감각을 세우려는 헛된 노력입니다. 하나님의 샬롬, 또는 우리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를 경험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오히려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 예수님은 맑습니다. 평화는 평화의 왕에게 묶여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하나 없이는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사역자를 영접할 때 우리는 복음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다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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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은 우리 자신에 대해 죽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라도 무엇보다 예수님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나에게 합당한; 누구든지 자기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태복음 10:37).

우리 자신의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세상에 투사하려는 죄악된 욕망을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마 10:38-39). 그분의 길은 의롭고 평화와 행복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잠시 고난을 겪을지라도 평강의 왕이 우리의 영원한 평안을 지켜주십니다.

평강의 왕으로 통치하시는 예수님

이사야서에 나타난 평강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그의 왕국을 완성하실 때 예수님을 통해 열매를 맺습니다. 그날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한 샬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에덴에서와 같이 더 이상 고통과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맨 처음부터 의도하신 대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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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이제 하나님의 거처는 백성 가운데 있고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자신이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이전 것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요한계시록 21:3-4).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소서, 주 예수여! 땅 위에 평화를 세우십시오!

John Townsend

John Townsend는 성경의 좋은 소식을 연구하고 나누는 데 평생을 바친 열정적인 기독교 작가이자 신학자입니다. 목회 사역에서 15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John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직면하는 영적 필요와 도전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기 있는 블로그인 Bible Lyfe의 저자인 John은 독자들이 새로운 목적 의식과 헌신으로 신앙 생활을 하도록 영감을 주고 격려하고자 합니다. 그는 매력적인 글쓰기 스타일, 생각을 자극하는 통찰력, 현대의 도전에 성경 원칙을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인 조언으로 유명합니다. 글을 쓰는 것 외에도 John은 제자도, 기도, 영적 성장과 같은 주제에 대한 세미나와 수련회를 이끄는 인기 있는 연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명문 신학 대학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가족과 함께 미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